축제 (한국시나리오걸작선 77)
임권택 감독의 96번째 영화 <축제>는 상업영화에서 작가영화로 옮겨간 <잡초>(73)와 그의 영화 세계에서 하나의 완성을 이룬 <만다라>(80)에 이어 세 번째 시작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서편제>를 통해 만나게 된 소설가 이청준과의 공동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축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수많은 원작소설을 가진 영화들이 소설과 영화가 서로 맺는 일회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축제>는 일 대 일의 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구도를 생성해 내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변화되어 가며 새로운 자기 틀에로 질적 전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의 구도 아래 이루어졌다. 임권택 감독은 이청준 작가의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토대로 나이든 어머니의 장례식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내어 영화에서 이중적인 구도로 평행하게 진행한다.
임권택 감독은 이 동화를 하나의 축으로 삼고 시골집의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죽음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을 그려나간다. 고유의 장례식은 한국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하나의 사유방식일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들은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고, 또한 살아남은 자들이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태도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무수한 전통의 갈래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아무런 모순 없이 하나로 뒤섞이면서 그 자체로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불교를 만나고, 유교를 만나고, 민속신앙을 만난다. 서로 다른 가르침과 서로 다른 생사관 속에서 <축제>는 우리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이미 곁에 없는 할머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죽은 자를 보내기 위해 산 자들이 모인다. 그러나 장례식이라는 그 모임의 절차 안에서 죽은 이가 산 자들을 화해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함께 살아가도록 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