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라스 루만 인식론적 입문서
‘옛 유럽적’이라는 말은 니클라스 루만이 즐겨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는 이 개념을 어떤 특정한 견해가 낡아버렸고 시대에 뒤졌다는 것을 드러내야 할 때면 늘 사용한다. 비록 루만의 견해로는 아직 시대에 뒤지지는 않았어도 완전히 낡았다는 것은 그가 존재론적 사고라고 부르는 그런 사고들이다.2) 그런데 루만이 말하는 존재론이란 다음과 같은 의미다. “어떤 관찰자가 존재/비존재라는 구별을 가지고 작동하며, 이 구별에 힘입어 자신이 중요한 것, 연계 능력이 있는 것, 간단히 말해 '존재자'로 간주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SA 5: 228).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일단 ‘관찰자’와 ‘구별’이라는 용어를 끌어들임으로써 루만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지극히 중요한 용어 내지는 사실을 주제로 다루게 된다. 이 용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 오로지 내용적인 면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이 인용문으로 파르메니데스 이후로 명백히 제기된 질문, 즉 우리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그것으로 이 세상의 사물을 가리킬 때 실제로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을 끌어들인 것이 된다. 루만의 관점에서는 서양의 사고 전통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발견된 해결책들은 기껏해야 역사적 의미만 지닐 뿐이다. 그리고 그가 제기한 질문, 즉 “우리가 20세기 말의 현대사회에 와 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해야만 하는가?”(SA 5: 229)라는 질문은 순전히 수사적인 말일 뿐이다. 루만에 따르면, 이 시대의 제반 사회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하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적어도 이론을 구축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말이다. 그런데 존재론적 사고란 원래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