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가르고 치다
[추천평]
이 책을 읽는 내내 글쓴이의 거친 숨결을 느껴야 했다. 칼릴 지브란이었던가, 인간을 수치화하여 평가하는 것만큼 인간을 실추시키는 게 없다고 했던 이는.
그 거친 숨결은 그러니까 인간을 배반하는 교육환경에서 제정신 가진 교사라면 피할 수 없는 일상의 모습일지 모른다. 이 땅에서 인간이면서 교사, 교사이면서 인간, 그 이율배반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했을 터, 글쓴이의 치열함이 분노와 절망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성찰과 공부로 부단히 나아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게 그가 만나는 아이들을 목적으로 보는 데서 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단 한사람이라도 더 이 책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 한 아이라도 더 글쓴이와 같은 교사를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
- 홍세화 / 진보신당 대표
학교에서 배운 것들
학교폭력, 자살, 왕따, 은따, 불통, 체벌,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매 맞고 침묵하는 법, 상상력 굴복시키는 법, 시기와 질투, 끊임없는 비교, 경쟁, 경멸……
유하 시인이 감독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엔딩부분에 가수 김진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독이 직접 쓴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는 시를 모태로 했다. 영화는 1970년대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지금의 학교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그동안 많은 긍정적인 교육정책(?)의 시행 속에서,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학교는 1970년대의 학교와 다르지 않다.
무엇이 학교의 변화를 막고 있는가? 왜 학교는 변화를 거부하는가?
많은 매체와 많은 책들이, 더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그 문제에 나름의 대안들을 내놓았다. 결과는?
문제는 ‘교사’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역시 ‘교사’다.
비공식 조직활동에서 소외되면 승진은커녕 학교생활이 힘들어지고, 제왕적 권력에 빌붙기 위해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상황에서 교육의 삼주체라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손님이 될 수밖에 없다. 일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만연한 현실이다. 이 책이 교육현실에 대한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특히 ‘교사’를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교육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고 인간을 치는 것!
‘가르치다’의 어원을 보면 ‘가르다’는 말하다, 일컫다 등을 의미하고 ‘치다’는 키우다, 기르다의 의미를 갖는다. 즉 교육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고 인간을 치는 것.
〈교사, 가르고 치다〉는 1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온 젊은 교사의 치열한 고민과 고민에 따른 행동의 산물이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한 학교 교육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학교도 학부모도 아닌 바로 교사 자신에게 강도 높은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용기 없는 교사는 가르칠 자격이 없다, 부끄러움 없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 교사들이 먼저 공부할 시간이다 등 교사의 자질을 끊임없이 되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불편하지만 언급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비판과 교사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교사의 성장을 이끌어낸다. 교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교사의, 교사에 의한, 교사를 위한 혁신인 셈이다.
특히 종횡무진 인문서를 넘나드는 저자의 독서 편력과 그에 따른 철학적 사고의 습관은 문제의식을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짚어내는 데 탄탄한 이론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대안의 제시와 실천에도 힘 있게 다다르는 등 이론과 실천의 적절한 조화가 주목할 만하다.
현장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쓰는 저자의 난장스럽고 끝장스러움은 진정한 가르치는 자가 되고자 하는 한 젊은 교사의 단호한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교사가 말하는 교사에 대한 불편한 진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학교는 굴러가!
첫째, 귀족 스포츠인 테니스를 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선배들에게 아쉽게 질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둘째, 산을 무지하게 좋아해야 한다. 산속에서 모든 중대 사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술을 잘 마셔야 한다. 타 직업보다 한 시간 일찍 끝나는 퇴근시간은 밤을 즐겁게 한다. 윗분들의 말에 의하면 술 잘 먹는 선생이 아이들도 잘 가르친다고 하니, 수업도 끝내주게 해야 한다.
유행하는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에서도 볼 수 없는 이 노하우는, 다름 아닌 교사들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확실한 재테크 방법이다. 암암리에 서로를 이끌어주는 탄탄한 학교의 비공식 조직 문화를 날카롭게 꼬집는 글이다.
대통령은 씹어도 교장은 씹을 수 없는 특수한 제왕적 권력의 학교문화와 관리자에게 절대 충성해야 하는 교사의 승진 구조는 정글리즘 그 자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수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변화도 소통도 없는 우리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별볼일 없는 직장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새내기 교사의 의욕에 찬 열정이 식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열정이 식지 않는 소수의 이상한 교사는 동료 교사들의 냉대와 윗분들의 눈총으로 정말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학교는 굴러가”라는 말은 조직에 적응하는 데 아주 중요한 애정어린 조언이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적응해서 권력지향적 삶을 살 것인가? 적응을 거부하고 교육지향적 삶을 살 것인가?
학부모와 학생이 바라는 진짜 교사의 모습
직장인 교사가 될 것인가, 스승이 될 것인가?
저자는 시대의 주류가 되고자 하는 전문성보다 시대의 비주류인 소수성 교사로 남으라고 한다. 교사는 전문가가 아니고 지식인이라는 것. 시대를 비판하고 시대를 앞서가고 시대를 사유하는 지식인. 그러므로 스스로 소수자가 되어 교사가 그저 진급이나 안정을 ?는 직장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문제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이를 위해 가르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로 ‘불안의 긍정’을 꼽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학교라는 구조가 만들어낸 강박들 속에 자신을 억지로 맞춰야 하고 미래를 위해 권력에 기대 현실에 안주하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포기한 채 허무주의자가 된다. 성장을 위한 몸부림이 허무로 바뀌는 순간이다.
학교의 기업화, 교육의 시장화로 교사는 수업보다 행정에 치중하고, 학부모는 교사를 신뢰하지 못한다. 무한경쟁 시스템에 무방비 노출되는 학생들은 끊임없이 숫자화되고 상상력과 창의성은 무너진다. 이뿐인가, 학교 밖에서 요구하는 교사는 슈퍼맨이고 울트라맨이다. 윤리적 영웅, 현실보다 큰 이상들 때문에 교사들은 지친다. 지친 교사들은 유일하게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교실로 숨어든다. 정글이 아닌 평화를 갈구한다. 교실 문은 결국 굳게 닫힌다. 교권이 무너진다.
문제는 알지만 변화할 수 없는 현실을 개혁할 뾰족한 수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권위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탈권위에 도전하고 열린 사고로 학부모와 학생이 바라는 진짜 교사의 모습을 과연 찾을 수나 있는 것일까?
변화의 핵심은 학교 안의 작은 지도자, 교사다
희망을 실천하라!
“선생님들은 말만 잘하시잖아요. 세상은 참 어려운데 희망을 가지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믿겠어요.”
희망을 가장 많이 말하는 존재인 교사,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희망, 그러나 말뿐인 희망, 말로만 하는 희망의 파수꾼인 교사는 할 말이 없다. 반면 밤의 선생님이라 불리는 일본 교사 마즈타니 모사부는 이렇게 말했다.
“야쿠자가 되어버린 아이들 곁으로 가면 내가 할 일이 많지 않다. 변화도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간다.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끌고 온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러니 교사는 교실 밖으로 나가 아이들 곁으로 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도우며 희망은 앎이 아닌 실천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교육의 희망을 실천하기 위해 무엇보다 교사들이 당찬 이론으로 무장하여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론은 하나의 실천이고 교육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여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다.
“누구나 가고 싶고 누구나 가는 안정된 길만을 안내하는 소피스트를 닮은 교사보다 누구도 가지 않을 길 혹은 길 위에서 기꺼이 죽을 소크라테스 닮은 교사가 좋은 스승이라고 자부한다.”
사뭇 비장하다. 이 땅의 교사들에게 이토록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것일까. 책의 나가는 말에서 저자는 “교사는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무모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말로 이 각오를 뒷받침한다. 교사의 본질은 늙어져도 꿋꿋이 버티며 지속적으로 파란 청춘의 길을 걸어야 하기에 이토록 비장한 각오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