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그런 중매가 어디 있대유?
머 릿 말
(1)
창세기 18:23~33에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의인 오십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사는 사람들의 죄가 너무 많아서 멸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나누신 대화 내용입니다.
소동 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그 가족이 죽게 될까봐 몹시 걱정이 되어 하나님께 이런 제안 겸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적어도 소돔 성에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포함해 의인이 오십 명은 있으리라 예측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인 오십 명이 소돔 성에 살고 있는데도 악인이 많다고 그 의인 오십 명까지 함께 죽이실 거냐고,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은 부당하다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의인 오십 명을 악인들 죽이는데 함께 묶어 죽이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힘주에 항의를 합니다. 아주 강경한 어조로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겠다고, 그래서 의인과 악인을 동일시, 동일취급 하기라도 하신 것처럼 단정하고 강경 항의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의를 행치 아니하신 나쁜 심판자로 하나님을 몰아 부치며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의인의 숫자를 줄여 나가면서 -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의 폭이 상대적으로 늘여 나간 것이기도 하지만 - 아브라함의 태도가 차츰 차츰 누구러지다가 나중에는 애원하듯 간구하는 형태로 바뀌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을 쓴 저 역시 하나님의 깊고 완전하신 뜻을 미처 다 알지 못해서 제 눈 앞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부조리와 불의의 승승장구에 울분을 견디지 못하여 짜증, 투정, 질문, 항의를 거침없이 솔직하게 감성적으로 여과없이 토로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이것은 아직 철부지 목사인 저이기에 감히 할 수 있는 질문이요, 투정이요, 항의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부모님 앞에서 어린 아기가 하는애교일지도 모릅니다.
(2)
결국은 저 역시 아브라함처럼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 하게 되고 말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저를 그렇게 이끌고 계심도 알고 있습니다.
(3)
저는 목사입니다. 그것도 3대째 목사입니다.
제 할아버지는 감리교 목사로서 1919년 3·1 운동 때 평양 남산현 교회 광장에서 평양시민을 모아 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시고, 태극기를 나누어 주시고 만세 부르시며 평양시내를 행진하셨고, 신사참배를 반대하시다가 일본 제국주의 정부의 재판부에 의해 15년형을 선고 받고 평양 감옥에 투옥되어 고통 받으시다가 순국, 순교하신 박 석훈 목사님이십니다. 후일 우리 정부에서 애국훈장을 추서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도 감리교 목사로서 해방전 황해도 옹진군 흥리면 족다리에서 목회하시며 늘 일본 순사, 헌병에게 요시찰 인물로 감시 받으시고, 고문 받으시다가 해방후 옹진군 도원면 도원리 도원감리교회로 옮기시어 담임 목사로 계셨습니다. 6·25 사변이 일어나자 미처 피난 가지 못한 성도를 돌보셔야 한다며 1·4 후퇴전까지 공산치하에서 6개월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으시다가 겨우 1·4 후퇴때 피난하여 인천에 정착하셨으나 1952년 9월 28일 37세 젊은 나이에 소천하신 준 순교자이셨던 박 상준 목사이십니다.
제 어머니 윤 봉명 사모의 아버님(제 외할아버지)은 평남 강서에서 목회하시던 윤 군서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새문안 교회 교육 전도사, 신일준고등학교 교목, 수유제일교회 부목사, 염광교회(경기도 화성군) 담임목사, 춘천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다가 정년 은퇴한 박 승일 목사입니다.
(4)
저는 이사야 1:18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와 의사소통의 언로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의사소통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쌍방이 서로 의사를 주고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하나님께 여쭈어 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읽다가 답답한 장면이 나오면 짜증도, 투정도 부립니다.
간혹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항의도 합니다.
무조건 아첨하며 만사에
“아멘”
“할렐루야”
“지당하옵나이다”
만 하는 목사가 아직은 되지 못했습니다.
(5)
어차피 육신을 쓰고 사는 동안은 그 어느 누구든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안다는 것이 마치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것일 뿐이고, 천국에 들어간 후에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확실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글들은 한 철부지 목사 박 승일의 감성에 의한 성경 묵상록입니다.
정말 여러 모로 부족하고 어리석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 논문이 아닙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저의 생각을 닮으라고 권할 의도가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다가
(어라? 나도 성경 이 부분을 읽다가 이렇게 느꼈었는데 나와 비슷하게 느낀 목사도 있었네?)
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분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성경 독자로 부담없이 주고 받을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는 마음뿐입니다.
더러 더러 세상 살다보면 저처럼 어리숙한 사람의 이런 어리숙한 글도 있어야,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과 성도가 (아하 나보다 어리숙한 목사도 다 있구나. 그러니 내가 비관 낙심, 자기비하에 빠질 이유가 어디 있어?)
하며 자기를 긍정하고 새로운 용기로 삶의 의욕(신앙의 재기)을 되찾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주 안에서 보람 된 일이 되겠습니까?
(6)
시편 18:1~2에서 성군 다윗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큰 것만 10여 차례 죽을 고비를 하나님의 은혜로 넘겼습니다. 자잘한 것까지 치면 이루 셀 수 조차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정말 그 때마다 하나님은 저의 반석,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제 할아버지 박 석훈 목사님의 하나님, 제 아버지 박 상준 목사님의 하나님, 그리고 저 박 승일 목사의 하나님이십니다.
끝으로 저는 이 부족하고 유치하고 어리숙한 이 글들이 삼가 하나님 아버지께 누를 끼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고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신선하고 유익한 동기부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독자 모두 하나님께 솔직하고, 결국 겸손하게 그 품에 안겨 모든 의혹을 풀고 안식과 만족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7)
엘엘로헤 이스라엘 !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엘엘로헤 박 승일 !!
(하나님 박 승일의 하나님)
엘엘로헤 (독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어 보세요.) !!!
호반의 청정도시 춘천에서
2015. 1.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