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하 소설전집 7 - 진눈깨비 결혼
모순으로 가득 찬 80년대의 시대적 초상
한국 현대사에서 80년대란 갈등과 대립,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 찬 시대였다. 작가는 최진우와 지소영 두 사람을 결혼이라는 틀 속에 집어넣어 그들의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80년대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부조시켜나간다. 이 두 사람은 역사적 격변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심리적 갈등은 개인적 상처 차원만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는 역사의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여기에 세대적 계층적 차이, 가족간의 원한관계가 이들의 결혼생활에 또다른 갈등 요인을 제공한다. 자기 부정과 일탈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입은 이들이 일쑤 나아가는 길이다. 결혼을 앞두고 무녀 차림의 여자와 환상 속에서 관계를 맺는 최진우의 행위나 “두번 다시 사내가 나를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결혼 전날 스스로 자신의 처녀성을 파괴하는 지소영의 행위는 부정과 일탈의 극단적인 예이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80년대를 살아오면서 작가가 품고 있었던 갈증과 혐오를 보여주는 동시에 저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모든 동시대인들의 갈증과 혐오를 드러내준다. “알맹이는 바스라지고, 그걸 싸고 있던 내용은 벌써 부패해서, 오직 악쓰는 소리만이 혼미 속에 남아 있을 뿐”인 그런 세월의 기록인 것이다.
역사의 폭력과 마주한 개인의 성찰과 환상의 힘
문학평론가 김진수는, 이 작품이 “세계의 폭력에 대해 ‘나’ 역시 책임이 있다는, 아니 어쩌면 바로 ‘나’의 욕망이야말로 저 세계의 폭력이 기원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역사와 개인, 세계와 자아, 타자와 주체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할 때, 일본인 아내와 헤어져 홀로 의연한 삶을 살아가는 오덕 선생이야말로 “정신을 잃지 않은 어른”이며,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참된 인간의 모습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가 보여주는 철저한 자기 성찰은 이 작품이 제기하는 커다란 화두인 동시에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데서 우리는 작가의 폭넓은 통찰력과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여기에 이제하 특유의 환상적 에피소드들이 더해져, 정치와 역사 문제를 지금까지의 다른 한국 소설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문학적 위상을 확보해내고 있다.
『진눈깨비 결혼』은 시대적 아픔에 대한 성찰과, 치열한 존재론적 고뇌에서 탄생한 환상의 힘이 서로를 지탱하고 이끌어가면서, 탁월한 인간 이해와 고도의 예술적 경지를 동시에 성취해낸 인상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