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하 소설전집 3 - 열망 1
우리 문학사에 '예술가소설'이라는 새 장을 열며 그 어느 누구보다도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이제하!
그는 전통적인 소설작법과 관습적인 서술방법을 과감히 깨뜨리고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개인의 내면을 깊이 천착한 작품세계를 선보여왔다. 특히 그의 소설이 추구한 '환상적 리얼리즘'과 '광기(狂氣)의 미학'은 한국문학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제 시대적 아픔과 존재론적 고뇌를 함께 끌어안음으로써 우리 소설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킨 이제하 소설의 정본을 독자 앞에 내놓는다. 그의 30여 년의 문학 인생을 결산하는 <이제하 소설전집>은 그가 쌓아올린 문학적 위업과 도저한 예술혼을 선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가게 문을 열기 위해 호텔로 들어설 때면 지요(姜知女堯)는, 종신형을 치르려고 독방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때로 받는다. 큰길 쪽에서 아케이드로 들어설 때는 그렇지도 않았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종신형이 좀 과장이라면 십 년쯤의 선고를 받으러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라는 것이 옳다. 싫다, 싫다는 감정이 너무 오래 돼 그렇게 고질증 비슷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여느 가게들처럼 화랑이 열시에 문을 열 때는 그래도 덜했다.
화랑 주인 심씨(沈氏)가 어느 날, 우리는 내일부터 아홉시에 문을 열기로 합시다라고 한 때로부터 그 '싫다'는 감정은 숨어 있던 마음속의 구덩이로부터 한꺼번에 머리들을 쳐들고 그녀를 에워싸버린 것 같았다. 그 말을 할 때 심씨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장사를 하려면 바지런해야 해요라든가, 파리 날린다고 열시에 문 열 수 있어?라든가 고용주다운 그런 설교를 내세울 작정이었다면 왜 똑바로 쳐다보고 당당히 말 못하는가. 눈을 깔고 말은 했어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재미없어…… 그런 투의 끈끈한 강압이 그 바닥에서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때 지요는 처음으로 주인의 따귀라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큰길 쪽의 출입문은 열시에야 셔터를 올린다. 호텔 쪽 복도에도 창살 셔터가 내려져 있긴 하지만, 이쪽 것은 가게마다 하나씩 키가 배정되어 있다. 그것을 꺼내들고 허리를 굽히고 있는데, 눈에 안 띄던 호텔 보이가 달려오는 기척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