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라
“진보라는 천재다!
진보라는 피아노를 자기 마음대로 친다.”
이것이 지금 나로서는 진보라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 칭찬인 것 같다. 고 양주동 선생이 그 추천사에 ‘천재’ 운운한 S시인이 예전에 공개리에 “申在善이는 ‘천재’다! 신재선이는 시를 자기 마음대로 쓴다.”고 했을 때, 내가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천재만이 천재를 알아보는 법입니다!”라고 했지만, 아직도 그 때의 고마웠던 마음빚을 못 갚고 있다.
진보라도 자신을 천재라고 알아봐 준 이 시집을 읽고 마음속으로나마 고맙게 여겨 “천재를 알아보는 사람도 역시 천재에요!”라고 해 줄까?
나는 나보다 연세가 훨씬 더 높은 여러 어른들로부터 가진 재주에 비하여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 그 동안 받은 넘치는 사랑을 갚을 길이 없었는데, 내가 지금 나보다 훨씬 더 어린 천재 진보라를 발견했고, 진보라를 위해 열심히 박수를 칠 때 그 동안 받은 많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이 시집도 내가 진보라를 위해 치는 하나의 작은 박수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진보라를 위해서 이 작은 박수를 칠 수 있다는 것-나보다 훨씬 나이 어린 천재를 발견하고 그 재주에 감탄하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일이 너무너무 기쁘다.
그 옛날에 나이 어린 나를 발견하고 나보다 연세가 훨씬 더 높았던 어른들이 박수를 쳐줄 때의 마음이 이토록 기쁜 마음이 아니었나 하고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한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치는 것 인만큼 박수소리가 듣는 사람 마음에 안 들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말길 삼가 부탁드린다.
시를 쓰는 것이 시시하게 느껴져 더 이상 안 쓰기로 결심하고 한 동안 시를 안 썼는데, 이 시집을 몹시 내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가 없어서 완전히 손 놓고 있던 시를 몇 편을 더 쓰게 되었다. 그것은 몇 년 전 우연히 처음 만났던 그 이름이 이 시집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와 다시 반갑게, 고맙게 연락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제1부에 실은 시는 내가 진보라를 처음 만난 날에 쓴 시들이다. 제2, 3, 4부에 실은 시는 대부분 이 시집을 위해 이번에 급히 쓴 시들이다.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나쁜 점은 모두 이 시집을 급하게 만든 내 탓이다. 반대로 독자가 이 시집에서 좋은 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좋은 시를 쓰도록 내게 영감을 준 음악가 진보라 덕분이다.
어쨌든 이 시집은 내 보잘 것 없는 재주로 최대한 애쓴 결과물로, 나로서는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 경의이자 최대 찬사다.
처음 진보라 공연을 봤을 때도 그랬고, 그 후 공연을 보면서도 느낀 점을 한 가지 쓴다.
가끔 진보라가 협연 중 즉흥연주를 할 때 상대가 툭툭 던지는 어떤 음이든 턱턱턱 무조건 다 받아주며, 상대를 웃으며 바라볼 때가 있는데, 내게는 그 것이 마치 너그럽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어린 아들이 부리는 어떤 어리광이든 무조건 다 받아줄 때 보여주는 항상 따뜻하고 그윽한 눈길과 자상한 마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일단 진보라가 무대 위에 섰을 때는, 그녀와 같이 무대 위에 선 사람이든, 무대 밖에서 그녀의 연주를 듣는 사람이든, 누구도 그녀보다 더 어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그녀가 연주하여 넓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투망이 되고, 그 음악을 듣는 청중들은 물고기가 된다. 그래서 청중들은 그녀가 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어부가 던진 투망에 걸린 물고기들이 투망을 끄는 어부의 손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듯이.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형님 내외분과 이 두 분의 큰딸인, 자기 이름을 내건 이 시집을 내는 것을 진심으로 엄청나게 기뻐한 진보라에게 특별히 감사한다. 이 분들의 넓은 이해심이 없었다면 이 시집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진보라 공연을 만날 수 있도록, 이번에 진보라측과 전소속사 간 소송에서 진보라측이 승소하는데 강한 지원을 한 강지원 변호사님, 표지사진을 찍은 이희성 씨, 표지 디자인에 애쓴 유지연, 임은혜, 이일영 양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나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너무 싫어하여 좀체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다. 2008년 4월 9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진보라 콘서트가 끝난 뒤, 진보라와 함께 사진에 찍히는 것이 너무 기뻐서, 이번에 거의 9년 만에 사진기 앞에 섰다. 9년 만에 찍힌 사진을 이 시집의 표지로 사용했으니 이것도 좋게 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진보라 영혼과 몸이 늘 건강하고, 만사에 다 잘 되기를 내가 항상 빕니다!”
지금도 나를 아껴주시는 어른들이 나를 볼 때마다 춤 출 듯이 기뻐하듯, 나는 지금 진보라 음악을 들으며 기뻐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