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적 관계
정략결혼... 너무나 증오하는 단어다. 아니 꿈만 같은 단어다. 사랑하지 않는 이와의 결혼이라니 그런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니. 새벽은 곧 굳은 결심에 서린 눈동자를 한 채 꾸려 두었던 작은 짐을 집어 들었다. 이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은 나은 상황으로 바꿔치기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새벽은 이내 휙 하고 유연한 다리를 들어 창틀에 걸터앉았다. 그 틈에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놓았던 신문쪼가리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사뿐히 방바닥 위에 내려앉는다. 그곳엔 한 구직광고가 적혀 있었다. ' H.S. 그룹 사장실 비서를 모집합니다 ' 새벽의 가출은 그렇게 감행되었다. 정략결혼 상대자를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숨긴 채 그의 소굴로 뛰어 든 당찬 여인의 못난이 비서 되기 대 작전.
따분한 헤어스타일, 일부러 눈을 가려버린 듯한 참을 수 없는 돋보기 안경 그리고 제대로 된 여자라면 거저 주어도 입지 않을 것 같은 펑퍼짐한 옷. 그러나 팔에 감겨 오는 허리의 굴곡은 이제껏 현석이 안았던 그 어떤 여인네보다 아름다운 것이었다. ' 푸대자루 같은 옷 속에 이런 몸이 숨겨져 있었다니. 다리만 예술인 건 아니었군 ' 한 오라기도 비져 나오지 않게 질끈 묶은 - 비녀 꽂기에 딱 어울릴 만한 - 머리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향은 현석이 태어나서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은밀하고도 자극적인 향이었다.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현석은 자신의 몸이 단단해지며 욕망이 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걸핏하면 눈싸움을 걸며 빽빽대는 못난이 여비서를 철저히 무시하는 남자,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의 겉모습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이 하나씩 그의 눈동자에 잡혀 오기 시작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