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
드넓은 청룡관의 정원에 가을이 오면 단풍으로 나무들은 본래의 제 색을 낸다. 여름 한철 입었던 푸른 교복을 벗고 가을에 사복을 갈아입는다. 기념관 광장 앞의 은행나무 길엔 황금빛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온 주위를 황금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가을의 운치를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겠지. 식구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황금룡 한얼은 소란스런 가을을 예감하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몰래 변장을 하고 그들 틈에 섞여 그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의 아버지인 청룡은 참으로 희한한 취미생활이라고 했지만 한얼은 떠들썩한 것이 좋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하지만, 어린 나이엔 어린 나이답게 즐길 수 있는 건 즐겨야지 않은가.
그의 나이는 13살이었다. 아직 13살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0살, 그 보다 더 어린나이에 황금룡의 계승자가 되어 성인취급을 받아야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음정, 박자 무시하며 ‘우리 유치원~’ 노래 부를 때 그는 용족 선생을 앞에 두고 용족의 역사를 배워야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인간 선생을 앞에 두고 인간의 역사를 배워야 했다. 어릴 때 받는 교육은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그때 배운 지식들이 아직도 머리 속에 박혀있는 걸 보면. 아니면 자신이 인간이 아닌 용족이라서 그런가?
뭐, 아무튼 그건 상관없는 일. 배우고 익혀야한다기에 그는 군소리 없이 배우고 익혔다. 그러다 보니 어린나이에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는지. 10살에 황금룡을 승계하자 그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그전까지는 용족 마을 결계 속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에게 거는 모두의 과도한 기대에 숨이 막혔다. 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야 했다. 어리광은 통하지 않았다.
황금룡 한얼. 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호칭이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노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이름. 청룡관 앞 기념관으로 소풍 오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운 내색 짓는 걸 허락 받지 못하는 존재. 그들 틈에 끼여 또래에 맞는 놀이를 같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존재. 동요도 같이 부르지 못하는 존재. 그는 13년 세월동안 그리 지내왔다. 간혹 변장을 하고 그들 틈에 끼여 놀지 않았다면 그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제 성질 가는 대로, 제 마음대로 이 지구의 신수 황금룡을 풀어 지구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을 것이다.